
2018년 개봉한 아리 애스터 감독의 영화 ‘유전(Hereditary)’은 현대 공포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가족의 죽음을 시작으로 드러나는 저주, 정신 질환과 유전이라는 소재를 통해 깊은 불안과 공포를 자아내며 관객의 정신까지 파고드는 심리 공포의 정수입니다. 이 글에서는 ‘유전’에서 특히 강렬한 인상을 남긴 명장면들을 중심으로 그 속에 숨겨진 의미와 상징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목 잘림 장면의 충격과 상징
‘유전’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 중 하나는 단연 찰리의 죽음 장면입니다.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던 중 동생 찰리를 살리기 위해 전속력으로 운전하던 피터가 실수로 찰리를 전봇대에 부딪혀 목이 잘리게 하는 이 장면은, 공포 영화사에서도 손꼽히는 충격적인 순간으로 기록됩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고어 표현이 아닌, 전체 이야기의 전환점으로 기능하며 ‘유전’이라는 영화의 핵심 테마인 "가족 안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목이 잘리는 행위는 전통적으로 ‘의식적 희생’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으며, 실제로 이 장면 이후 영화는 점차 오컬트적이고 의식적인 분위기로 전개됩니다. 찰리의 죽음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악마 파이몬의 부활을 위한 제물로 해석되며, 그 시점부터 영화는 인간적인 공포에서 초자연적인 공포로 넘어가는 경계선에 도달합니다. 피터의 무기력한 반응과, 찰리의 죽음 이후 가족이 겪는 파국은 ‘유전’이라는 제목 그대로 피할 수 없는 숙명과 저주를 암시합니다.
오컬트 의식의 치밀한 연출
후반부로 갈수록 ‘유전’은 점점 더 오컬트적 성격이 강해집니다. 특히 애니가 발견하는 의식의 흔적들, 찰리의 노트 속 기괴한 드로잉, 할머니가 속했던 비밀 집단의 존재 등은 영화의 분위기를 극도로 불안하게 만듭니다. 이 의식들은 단순히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장치가 아니라, 악마 파이몬의 강림이라는 서사적 목적에 치밀하게 맞춰져 있습니다. 영화 후반, 애니가 지하실에서 자신의 어머니의 시신을 발견하거나, 남편이 불에 타는 장면은 모두 의식의 일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치 관객이 자신도 모르게 오컬트 의식에 참여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영화는 전통적인 공포의 클리셰를 따르지 않고, 점진적이고 논리적인 전개를 통해 관객을 그 의식 안으로 끌어들입니다. 이러한 치밀한 의식 묘사는 미장센, 사운드 디자인, 조명 등을 통해 더욱 강화됩니다. 예를 들어, 의식 장면에서는 밝은 조명이 사용되며, 이는 일반적인 공포 영화의 어두운 연출과 반대되는 방식으로 더욱 불안감을 조성합니다. 이처럼 ‘유전’의 오컬트 묘사는 단순한 종교적 상징을 넘어, 인간의 통제력을 무력화시키는 시스템으로 기능합니다.
악마 파이몬의 실체와 의미
영화 ‘유전’의 진짜 공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 즉 악마 파이몬의 존재에서 비롯됩니다. 파이몬은 실제로 존재하는 고서 <솔로몬의 열쇠>에도 등장하는 악마로, 영화에서는 찰리의 몸을 시작으로 피터에게까지 옮겨가며 그 실체를 드러냅니다. 영화 초반에는 가족의 정신질환과 트라우마로 보이던 현상들이, 후반으로 갈수록 초자연적 존재의 개입임이 명확해지며 ‘유전’은 단순한 심리극을 넘어서 오컬트 호러로 변모합니다. 파이몬은 지식과 예언을 주관하는 악마로 설정되어 있는데, 영화에서는 그가 선택한 인간의 육체에 들어가 세상을 지배하려는 의도로 묘사됩니다. 특히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나체의 신자들이 피터 앞에 무릎 꿇고 ‘파이몬 만세’를 외치는 장면은 종교적 광기와 악마 숭배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이는 단순한 공포를 넘어선 존재론적 불안, 즉 "우리가 신념이라 믿는 것들이 얼마나 쉽게 뒤바뀔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파이몬이라는 존재는 관객에게 보이지 않지만, 그의 영향력은 영화 전반에 걸쳐 강하게 작용합니다. 찰리의 기이한 행동, 어머니의 비밀스러운 과거, 피터가 겪는 환각 등은 모두 파이몬의 지배력 아래 놓여있다는 암시를 줍니다. 이러한 구조는 ‘유전’이라는 제목이 단지 DNA나 가족 병력만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까지 조종하는 보이지 않는 유산임을 드러냅니다.
‘유전’은 단순한 공포영화가 아니라, 심리, 상징, 오컬트, 철학이 결합된 복합장르의 작품입니다. 특히 목 잘림, 의식, 악마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분석하면, 이 영화가 얼마나 치밀하고 공포스러운 세계를 구축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영화를 다시 본다면 이전에 보지 못했던 디테일들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지금, 다시 한번 ‘유전’을 감상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