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영화 <글라스(Glass, 2019)> 는 단순한 슈퍼히어로 영화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심리와 정체성, 사회가 규정하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탐구한 작품이다. 이 글에서는 심리학적 시선으로 영화의 주요 캐릭터를 분석하고, 감독이 전달하고자 한 인간 이해의 메시지를 깊이 있게 살펴본다.
다중인격과 정체성의 분열 — 케빈의 심리학적 구조
영화 <글래스>에서 가장 강렬한 인물은 단연 케빈(제임스 맥어보이)이다. 그는 24개의 인격을 가진 ‘다중인격장애(DID)’ 환자로, 각 인격이 서로 다른 성격, 말투, 심지어 신체 반응까지 보인다. 케빈의 인격체 중 하나인 ‘비스트’는 초인적 힘을 발휘하며, 이는 단순한 상상 속 존재가 아니라 그가 겪어온 극심한 트라우마가 만든 정신적 방어기제의 결과물이다.
심리학적으로 케빈의 다중인격은 ‘해리성 정체감 장애(DID)’로 해석된다. 이 장애는 어린 시절 학대나 극심한 트라우마로 인해 자아가 분열되며 발생한다. 케빈은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지속적인 폭력을 당했고, 그 고통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인격을 만들어냈다. 이 중 ‘패트리샤’는 통제와 질서를 상징하며, ‘헤드윅’은 9살 소년으로서 순수함과 무력함을 표현한다. 그리고 ‘비스트’는 그 모든 억압과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궁극적 존재로, “고통을 통해 진화한다”는 그의 신념을 대변한다.
케빈의 심리는 인간의 ‘자기 방어 기제’의 극단적 형태라 할 수 있다. 현실의 고통을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 인간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영화는 이러한 심리적 메커니즘을 초인적인 힘으로 시각화함으로써, 정신 질환에 대한 사회적 오해를 비판하고 있다. 케빈은 괴물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받은 인간의 극단적 자화상이다.
천재와 망상 사이의 경계 — 미스터 글라스의 사고 구조
엘리자 프라이스(미스터 글래스, 사무엘 L. 잭슨)는 천재적인 두뇌를 가졌지만, 선천적 골형성 부전증으로 인해 뼈가 유리처럼 쉽게 부서진다. 그는 자신의 신체적 약점을 보상하기 위해 지적 우월성을 극대화하고, 세상을 조종하려는 욕망으로 나아간다.
그의 사고방식은 ‘과잉 합리화’와 ‘나르시시즘적 사고’의 복합체다. 그는 자신이 비정상적 존재이기 때문에 세상에도 자신을 ‘보완할 존재’, 즉 초인적 인간이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신념은 단순한 망상에 그치지 않고, 사회 구조 속에서 배제된 인간이 자신만의 의미 체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엘리자는 세상이 자신을 무시하고 버렸다고 느끼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수많은 비극을 의도적으로 일으킨다. 이는 ‘과대망상형 자기 확증 편향’의 전형적인 패턴이다. 그는 현실보다 자신의 논리를 우선시하며, 세상을 자신의 스토리 속 조연으로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감독은 그를 단순한 악당으로 그리지 않는다. 미스터 글라스는 오히려 사회적 배제의 결과로 탄생한 ‘비극적 지성’이다. 그의 ‘악’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 결핍의 산물이다. 따라서 그의 행동은 비판받을 만하지만, 그 심리의 근저에는 ‘존재하고 싶다’는 절규가 자리한다.
영화 후반부에서 엘리자가 “이건 오리진 스토리야.”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가 현실을 초월해 자신의 존재를 신화화하려는 심리적 욕구를 보여준다. 그는 단순히 세상을 파괴하려는 자가 아니라, 자신이 속하지 못한 세계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철저히 인간적인 존재다.
이성적 통제의 위험 — 엘리 스테이플 박사의 실험적 심리전
영화의 또 다른 중심 인물인 엘리 스테이플 박사(사라 폴슨)는 정신과 의사로, 자신이 맡은 세 명의 환자들이 모두 초능력을 가졌다는 망상에 빠져 있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이들에게 ‘너희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라는 암시를 지속적으로 주입하며, 이들의 정체성을 부정하도록 유도한다.
이 부분은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실험의 영화적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이 믿는 세계관과 모순된 정보를 받으면 심리적 불편함을 느끼고, 결국 스스로의 믿음을 수정하게 된다. 엘리 스테이플은 바로 이 원리를 이용해 케빈, 엘리자, 데이비드를 조작한다.
하지만 그녀의 심리전은 단순한 치료가 아니라 ‘사회적 통제’의 은유다. 그녀는 ‘비정상’을 교정하는 권력의 상징으로 등장하며, 사회가 ‘다름’을 어떻게 억압하는지를 보여준다. 실제로 영화 후반부에 밝혀지듯, 그녀는 비밀 조직의 일원으로, 초인적 존재의 등장을 막기 위해 활동한다.
이 설정은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개념과 유사하다. 즉, 권력은 항상 ‘정상’의 이름으로 ‘비정상’을 규정하고, 억압한다는 것이다. 엘리 스테이플은 이 과정에서 인간의 다양성을 부정하며, 사회적 안정이라는 명분 아래 모든 개성을 제거하려 한다. 결국 그녀가 실패하는 이유는, 인간의 정신은 결코 완전히 통제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의 심리 조작은 잠시 효과를 발휘하지만, 결국 미스터 글라스의 계획으로 모든 진실이 세상에 공개된다. 이는 ‘진리의 억압은 언젠가 폭발한다’는 감독의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영화 <글래스>는 단순히 초능력자들의 대결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 심리를 해부하는 철학적 작품이다. 케빈의 다중인격은 ‘고통을 견디기 위한 자아의 분열’을, 엘리자의 천재성은 ‘인정받지 못한 지성의 비극’을, 엘리 스테이플 박사는 ‘정상성의 폭력’을 상징한다.
샤말란 감독은 세 인물을 통해 “진짜 비정상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사회가 규정한 ‘정상’의 기준은 언제나 불완전하며, 진정한 인간 이해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글라스>는 그 복잡한 인간 심리를 통해 관객에게 자기 성찰을 유도하며,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는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존재’ 임을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