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아이리시맨 촬영지 탐방 (뉴욕, 펜실베이니아, 시카고)

by filmemorie 2025. 10. 20.

아이리시맨
아이리시맨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대작 《아이리시맨(The Irishman)》은 2019년 공개 이후 지금까지도 영화 팬과 평론가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회자되는 작품이다. 이 영화의 핵심적인 매력 중 하나는 바로 ‘공간의 진정성’이다. 단순히 세트나 CG로 구성된 세계가 아니라, 실제 도시의 역사와 정서를 담은 실존 공간에서 촬영되었다는 점이 《아이리시맨》을 더욱 생생하게 만든다. 마틴 스콜세지는 뉴욕, 펜실베이니아, 시카고라는 세 도시를 통해 인물들의 삶과 시대의 공기를 동시에 담아냈다. 이번 글에서는 그 세 도시를 중심으로 영화 속 촬영지를 하나하나 탐방하듯 살펴보며, 각 장소가 상징하는 의미와 미학적 가치를 분석해 본다.

뉴욕: 마피아 세계의 심장부

《아이리시맨》에서 뉴욕은 단순한 배경이 아닌, 인물의 출발점이자 욕망의 근원으로 그려진다. 마틴 스콜세지는 뉴욕에서 태어나고 자란 감독답게, 이 도시의 질감과 공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영화 초반부에서 프랭크 시런(로버트 드 니로 분)이 트럭 운전사로 일하며 범죄 조직과 인연을 맺는 장면은 퀸즈(Queens)와 브루클린(Brooklyn) 일대에서 촬영되었다. 실제 1950년대 뉴욕 산업 지역의 분위기를 재현하기 위해, 제작진은 낡은 공장 건물과 오래된 철제 다리를 그대로 복원했고, 당시 모델의 트럭과 유니폼까지 세세히 고증했다.

뉴욕의 거리에서 자주 보이는 노란 가로등, 젖은 아스팔트, 오래된 레스토랑의 간판들은 스콜세지 영화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미장센이다. 영화 속에서 프랭크가 마피아 보스 러셀 버팔리노(조 페시 분)와 처음 만나는 장면은 브룽크스(The Bronx)에 위치한 실제 식당에서 촬영되었다. 그 식당은 지금도 현존하며, 많은 영화 팬들이 ‘아이리시맨 투어’의 필수 방문지로 꼽는다. 스콜세지는 이 장소를 통해 단순히 조직의 회합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미묘한 긴장과 권력의 위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뉴욕의 빌딩과 골목길은 인물의 내면을 반영하는 일종의 ‘거울’ 역할을 한다. 높은 빌딩 숲은 인간의 야망을, 어두운 골목은 그 욕망의 그림자를 상징한다. 스콜세지는 도시를 인물의 심리적 공간으로 사용하며, 프랭크의 삶이 점점 회색빛으로 물들어가는 과정을 도시의 톤과 조명으로 표현했다. 오늘날 뉴욕을 방문한다면, 브루클린의 그린포인트(Greenpoint) 지역이나 브룽크스의 낡은 식당가를 찾아보길 추천한다. 영화의 공기와 현실의 도시가 맞닿아 있는 듯한 묘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펜실베이니아: 평범한 일상 속의 범죄 그림자

《아이리시맨》의 중심 서사는 뉴욕에서 시작되지만, 그 무게감은 펜실베이니아에서 완성된다. 프랭크 시런이 실제로 살았던 곳이자, 영화 속 대부분의 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펜실베이니아는 미국 산업의 심장부이자 동시에 쇠퇴의 상징으로, 영화는 이 공간을 통해 인간의 노년과 회한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마틴 스콜세지는 이 지역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인물의 삶이 흘러간 공간’으로 그려냈다.

대표적인 촬영지는 리딩(Reading)과 스트라우즈버그(Stroudsburg)이다. 리딩의 낡은 주택가와 철제 다리는 프랭크의 평범하지만 무거운 일상을 상징한다. 특히 프랭크가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장면은 이 지역의 실제 가정집을 빌려 촬영했으며, 내부 인테리어는 1960년대 분위기를 그대로 복원했다. 벽지의 색감, 오래된 냉장고, 나무 식탁까지도 모두 고증을 거쳐 제작되었다. 이러한 세밀한 연출 덕분에 관객은 마치 그 시대 속으로 들어간 듯한 몰입감을 느낀다.

펜실베이니아는 영화의 후반부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프랭크가 노년의 나이에 홀로 요양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은 실제 펜실베이니아의 한 병원에서 촬영되었다. 이 장면은 조명과 색감이 거의 흑백에 가깝게 연출되어, 인생의 종착점에 다다른 인간의 쓸쓸함을 담아낸다. 화려한 뉴욕에서 시작된 그의 인생이 평범한 시골 병실에서 끝을 맞이하는 아이러니는, 영화의 주제인 ‘시간의 무게’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오늘날 펜실베이니아의 리딩이나 스트라우즈버그에는 영화 팬들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단순히 영화의 장소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 인간의 인생 궤적’을 직접 걸어보기 위해 방문한다. 이 지역을 여행한다면, 영화의 배경이 된 오래된 철교나 카페, 작은 주택가를 걸으며 스콜세지가 전하고자 했던 “평범한 삶 속의 비극”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시카고: 권력과 충돌의 상징 도시

시카고는 《아이리시맨》에서 지미 호파(알 파치노)의 정치적 활동과 몰락을 상징하는 도시로 등장한다. 스콜세지는 시카고를 통해 ‘권력의 욕망’과 ‘정치적 부패’를 비판적으로 묘사했다. 영화 속에서 시카고는 뉴욕보다 훨씬 넓고 차가운 공간으로 연출되며, 인물들의 관계가 냉정하게 계산되는 세계로 표현된다.

지미 호파가 대중 앞에서 연설하는 장면은 시카고 근교의 한 오래된 컨벤션 홀에서 촬영되었다. 실제로 1970년대 노동조합 집회가 열리던 장소를 빌려, 500명 이상의 엑스트라가 등장하는 대규모 장면이 만들어졌다. 이 장면은 아이리시맨 전체에서 가장 웅장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순간으로 평가받는다. 조명과 카메라 워킹이 인물의 표정과 군중의 파도 같은 반응을 교차시키며, 호파의 권력과 몰락을 동시에 암시한다.

시카고의 웨스트 시카고 애비뉴(West Chicago Avenue)와 밀워키 애비뉴(Milwaukee Avenue) 일대 역시 영화의 주요 촬영지다. 스콜세지는 이 지역의 오래된 건물과 골목길을 이용해 1960년대 시카고의 분위기를 재현했다. 특히 영화 후반부, ‘호파의 실종’을 암시하는 장면은 시카고 교외의 한 창고에서 촬영되었는데, 그 장면의 어두운 조명과 묘한 정적은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스콜세지는 폭력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대신, 공간의 기운을 통해 불안과 비극을 표현했다.

오늘날 시카고 관광청은 비공식적으로 《아이리시맨 촬영지 루트》를 소개하며, 팬들이 직접 영화 속 장소를 따라가 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시카고 리버 노스(River North) 지역의 오래된 호텔, 다운타운의 회의장 건물, 외곽의 창고 등은 영화 속 장면의 일부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영화 팬이라면 이곳을 걸으며 ‘스콜세지의 렌즈’로 도시를 바라보는 경험을 해보길 추천한다.

결론

《아이리시맨》은 단순히 배우들의 명연기와 감독의 연출력만으로 완성된 작품이 아니다. 이 영화의 진정한 힘은 ‘공간’에 있다. 뉴욕, 펜실베이니아, 시카고 — 세 도시는 각각 인간의 욕망, 일상의 어둠, 권력의 냉혹함을 상징하며, 전체 서사 구조를 지탱하는 축이 된다. 스콜세지는 도시를 배경으로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고, 인물을 통해 도시의 시대적 정신을 드러낸다.

뉴욕의 거리에서는 젊음과 욕망이, 펜실베이니아의 주택가에서는 후회와 노년의 고독이, 시카고의 회의실에서는 권력과 정치의 비극이 흘러넘친다. 세 도시가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공간의 서사’는 《아이리시맨》을 단순한 범죄 영화에서 철학적 명작으로 끌어올렸다. 마틴 스콜세지는 도시를 무대가 아닌 ‘하나의 인물’처럼 다뤘고, 그 속에서 인간의 역사와 감정을 동시에 담아냈다.

진정한 영화덕후라면, 《아이리시맨》의 촬영지를 단순히 보는 데 그치지 말고, 그 도시가 품은 시대의 공기와 인간의 흔적을 느껴보자. 영화의 철학은 화면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공간과 현실 속에서도 살아 숨 쉬고 있다. 뉴욕의 빛바랜 간판, 펜실베이니아의 조용한 골목, 시카고의 강가에서 스콜세지의 카메라가 담았던 그 순간을 떠올린다면, 당신은 이미 영화의 한 장면 속에 서 있는 것이다.